수면장애도 유전질환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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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4 22:10조회수
1074수면장애는 매우 흔한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수면장애가 같은 가족 내에서 함께 발생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가족 내에서 수면장애의 발생률이 높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수면장애가 유전질환일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가족 내에서 수면장애가 같이 발생한다고 해서 이들이 유전질환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수면질환의 극히 일부는 전형적인 유전질환인 경우도 있습니다. 치명적 가족성 불면증(fatal familial insomnia), 가족성 수면위상 전진 증후군(familial advanced sleep phase syndrome) 같은 질환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들 질환은 유전되는 방식과 원인 유전자도 어느 정도 규명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매우 드물기 때문에 일반적인 수면장애를 가진 경우와는 완전히 다른 얘기입니다.
한편, 수면장애가 유전질환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유전 경향이 있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개인의 성격, 체형, 키 등의 특성이 반드시 유전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약간의 유전 경향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불면증과 같은 수면장애의 유전 경향은 어느 정도일까요? 아쉽게도 수면장애가 매우 다양하며 정확한 검사 없이 다양한 수면장애를 진단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유전경향의 정도를 과학적으로 수치로 제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최근에 유전자검사기법의 발전으로 전장유전체연관분석(genome-wide association study: GWAS)이 시행되면서 불면증 진단의 정확도는 부족하지만 설문을 통해 불면증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의 두 집단을 모아서, 불면증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찾고자 하는 노력들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Stein 박사 연구팀이 2018년에 발표한 군인 대상 연구입니다. 군인 중 불면증이 있는 3000여명과 불면증이 없는 14000여명을 대상으로 전장유전체연관분석을 시행한 결과, 여러 유전자가 불면증의 발생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준의 연관 있음이 발견되었습니다. 가장 높은 연관성을 보인 유전자 부위는 7번 염색체의 q11.22 부위와 9번 염색체의 RFX3 유전자였습니다. 하지만 이들 유전자들이 어떠한 기전을 통하여 불면증의 발생에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것은 좀 더 연구가 시행되어야 합니다. 이 연구 결과에 얻어진 불면증의 유전 연구 결과는 영국의 유전체은행 데이터베이스인 UK Biobank 연구에서 불면증의 다중유전자위험점수(Polygenic risk score)에도 높은 연관성을 보였습니다. 불면증에 기여하는 유전자 영향은 주요우울장애, 2형 당뇨병의 발생과도 유의한 연관성을 보였으며, 아침형 특성, 주관적인 삶의 질과는 부적 연관성을 보였습니다. 이는 불면증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의 영향이 다양한 질병 또는 심리적 특성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불면증 발생이 이들 질환 또는 특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나온 결과일 수도 있겠습니다.
또다른 흔한 수면장애인 수면무호흡증의 유전적 경향도 알려져 있는데, 이는 수면 중 기도폐색이 발생하는 것이 신체적 특성, 즉 비만한 체형, 좁은 상기도, 작은 턱, 큰 혀 등의 특성이 타고난 유전적 영향을 갖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또다른 수면장애의 일종인 하지불안증후군도 유전적 경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00년대 초기 전장유전체연관분석 연구를 통해서도 MEIS1, BTBD9 등 여러 유전자가 하지불안증후군과 연관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수면장애는 유전질환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생활습관 개선과 신체적 정신적 건강의 향상을 통하여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헌정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수면센터)